이제 이야기는 중독 시절로 돌아갑니다. 아프고, 죄스럽고, 숨기고 싶은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지독한 알코올중독자도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리기 위해 과거를 고백합니다.
저는 문학청년 시절, 동료들과 어울리며 문학 수업을 하다 보니 아주 자연스레 술에 접하게 되고, 수주 변영노 선생의 <명정 40년사>와 양주동 교수의 <문주반생기>가 우리 문학청년들의 음주 교과서였습니다. 암울하던 일제 강점기에 절망과 울분을 술로 달래어야 했던 당시 지성인들의 아픔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예술가는 의례 술을 마시고 기행을 저질러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분들을 흉내냈던 것이 아닐까요?
가난한 문청(文靑)이었던 저는 다른 친구들이 작가 수업에 진력할 때 그럴 수 없었던 환경과 자신에 좌절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술로 아픔을 달래며 출판사와 잡지사의 말단 사원으로 세월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는 그런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연하게나마 작가의 꿈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괴로움이 저를 더욱 괴롭혔고, 술독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직장도 건강도 잃고 폐인이 되어 가자, 생계를 위해 저의 아내는 시 외곽의 변두리에 작은 분식 가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더욱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주변에 작은 공장들이 밀집한 곳이라 자연 손님들은 공장의 젊은 공원들이었습니다.
어떤 20대 초반의 손님은 백반 한 상을 시켜놓고 생마늘을 청합니다. 그 마늘을 씹다 말고 저를 부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아저씨 왜 마늘이 맵죠?” 이건 조그마한 식당에서 서빙하는 저를 원전 무시하고 놀리는 것으로 어린 손님의 갑질이 아닌 횡포로 느껴져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비참해서 울음을 삼키면 가게 뒤로 돌아가 소주를 병째 삼킵니다. 그래도 한때는 출판사의 편집장이었는데, 또 전문잡지 편집장이었는데 저런 어린 친구들에게까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나….
그런 나날이 계속되며 저는 깊은 술의 구렁을 빠져들게 됩니다. 헤어날 수 없는 알코올중독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마시면 죽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연로하신 부모님은, 아직 어린 두 아이는? 또 아내는? 이미 저는 폐인이 되었고, 아마도 간은 암까지는 몰라도 간경화까지는 간 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나만 살자고 분식집 운영으로 겨우 입에 풀칠도 힘겨운 아내에게 비싼 정신병원 치료를 요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엄혹한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나중에야 알았지만, 금단 증상을 두 차례 겪습니다.
첫 금단은 이렇게 옵니다. 비몽사몽 상대인 한낮이었습니다. 아침도 점심도 거른 상태였습니다. 알코올의 극심한 자극성으로 식도가 미란 상태로 짓물러 먹을 수 없고, 또 먹을 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극심한 조갈을 냉수로 겨우 달래며 누워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살던 집은 2층 슬래브 건물로 위층은 집주인 살고, 우리는 이래 층 가게에 딸린 조그만 방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술로 초주검 상태에서 초점 잃은 멍한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래층과 위층의 슬라브 사이에서 웬 젊은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정신줄은 놓지 않았는지 그들의 말소리가 선명히 전달되었습니다. 내용인즉슨, 젊은이들이 모여 반정부 전복 모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위층에는 연세 든 집주인 부부와 혼기를 놓친 노총각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면 집도 비울 테고, 더 이상한 것은 사람도 없는데, 웬 말소리가 1층과 2층 사이 슬라브 속에서 들려오는 것입니다.
슬라브 속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잖습니까? 그래 견디다 못해 밖으로 뛰어나가 행인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저기 이층 슬라브 속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죠? 그러자 그 행인은 별 미친놈 다 보았다는 듯한 눈으로 쏘아보고 말없이 휭하니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런 반정부 모의와 같은 환청은 알코올중독자들이 많이 겪는 증상이었습니다.
그렇게 1차 금단이 끝나고 며칠 후 2차 금단이 시작됩니다. 밤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금단은 취기가 있으면 절대 오지 않습니다. 심한 금단 상태에서도 술이 들어가면 거짓말처럼 금단이 사라집니다. 이런 금단이 무서워 술을 끊지 못하는 알코올중독자들도 많습니다.
술 없이 잠을 못 이루는 것도 일종의 금단입니다. 불면으로 잠을 이루기 위해 술을 수면유도제로 사용하다가 중독으로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탈진 상태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일 때였습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어릴쩍 죽마고우인 친구 전화였습니다. 오래동안 만나지는 못했지만, 소식은 듣고 있던 친구였습니다.
그는 당시 집권당의 요직에 있었습니다. 저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자격지심에 만나기를 꺼리던 친구였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친구가 내 전화번호를 알 리도 없을 텐데, 아무 의심없이 전화를 받습니다. 반갑다며 우리집에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내려놓고 잠든 아내를 깨웠습니다. 아내는 내 소란에 잠이 깨어 의심적은 눈초리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다구쳤습니다. 내가 식당 홀 청소를 할 테니 당신을 빨리 시 장보아다 친구 대접할 음식 장만하라고.
아내는 미친 사람 보듯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벨도 울리지 않은 전화를 붙잡고 혼자 통화하는 제가 완전히 정신병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점점 기력을 잃어가고, 곡기는 끊고 술에 의존하여 죽어가는 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드디어 정신병원에 입원시킵니다.
술과 함께 시작해야 하는 하루였습니다. 전날 음주로 아침 10시경에나 눈을 뜹니다. 술 없이 잠을 잘 수 없으므로 무슨 수를 쓰든 잠들기 위해 소주 2병을 구해 숨겨놓습니다, 한 병으로는 부족합니다. 오히려 정신이 더 똘망똘망해집니다. 그래 두 병째 음주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한창 마실 때는 소위 간에 기별도 아니 갈 양인데, 둘째 병의 반 정도에서 정신을 잃습니다. 장기간의 과도한 음주로 간의 알코올 분해 기능 심각한 손상을 입고 내성이 감퇴된 것입니다.
먼저 해장술을 마셔야 숙취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저를 살리기 위해 음주를 저지하려는 아내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집안에 고린 동전 한 잎 찾을 수 없습니다. 음식 장사를 하는 집인데 어디에 어떻게 숨기는지---. 음식점이니 반주를 즐기는 손님이나 술 찾는 손님을 위해 술이 준비되어 있을 텐데 그런 술도 없습니다. 손님이 술을 찾으면 앞집 구멍가게에서 가져다줍니다. 물론 술 도매상에서 상자로 받으면 더 저렴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건만 제가 훔쳐 마실까 두려워 비싸지만 한 병 한 병 사다 나릅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심정으로 술을 찾습니다. 정말 술 한잔과 영혼을 바꾸라면 바꿀 수밖에 없는 극심한 고통, 타는 듯한 조갈은 아무리 시원한 냉수로도 해소되지 않습니다. 머리가 깨어질 것만 같은 두통, 계속되는 헛구역질,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손 떨림, 터질 듯 뛰는 심장 박동, 이 모든 고통이 소주 반병이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편안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날이 왔습니다. 미처 잠에서 깨어 일어나기도 전에 아내가 황급히 들어와 이부자리를 치우면서 교회 전도사님이 오셨으니 예배 준비를 하라고 다그칩니다. 이런 불시의 방문 예배는 하나님을 쫓아낸 자리를 술로 채운 당시의 삶에 마치 고문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빨리 담배 피우고 해장술을 구해 마셔야 할 텐데 전도사님이라니, 아내에게 의존하고 사는 삶이라 거역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습니다.
잠시 후 전도사님과 몇 분의 여자 집사님들이 들어오고 가정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낭독하는 성경 구절은 왜 그리 길고, 찬송을 왜 그리 늘어지는지, 또 청승맞은 기도는 빨리 끝나지 않고 하염없이 계속되는지?
예배가 끝나자, 전도사님은 심각한 얼굴로 병원에 가자고 저를 압박했습니다. 제가 완강하게 거절하자 가서 진찰만 받아보자고 회유했습니다. 저는 화를 내면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어서 가시라고 문까지 열면 전도사님 일행을 내몰았습니다.
그들이 가고 잠시 숨을 돌릴 때였습니다. 문이 열리더니 아내가 막걸리 한 사발과 안주 몇 점을 방에 밀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애원해도 술을 주지 않던 아내가 달라지도 아니한 술을 줄 때 그 저의를 의심해야 할 텐데, 술이 급한 저는 의심할 겨를도 없이 그 술을 단숨에 마셨습니다. 뒤집히던 속이 편안하고 갈증도 해소되었습니다. 반쯤 누워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자 세상에 다시 없는 평온함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였습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정 두 명이 들이닥쳤습니다. 둘이 나의 두 팔을 꼼작 못하게 꺾어 제압하고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가게 옆 골목에는 병원 구급차가 시동을 켠 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술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중독 시절로 돌아갑니다. 아프고, 죄스럽고, 숨기고 싶은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지독한 알코올중독자도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리기 위해 과거를 고백합니다.
저는 문학청년 시절, 동료들과 어울리며 문학 수업을 하다 보니 아주 자연스레 술에 접하게 되고, 수주 변영노 선생의 <명정 40년사>와 양주동 교수의 <문주반생기>가 우리 문학청년들의 음주 교과서였습니다. 암울하던 일제 강점기에 절망과 울분을 술로 달래어야 했던 당시 지성인들의 아픔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예술가는 의례 술을 마시고 기행을 저질러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분들을 흉내냈던 것이 아닐까요?
가난한 문청(文靑)이었던 저는 다른 친구들이 작가 수업에 진력할 때 그럴 수 없었던 환경과 자신에 좌절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술로 아픔을 달래며 출판사와 잡지사의 말단 사원으로 세월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는 그런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연하게나마 작가의 꿈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괴로움이 저를 더욱 괴롭혔고, 술독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직장도 건강도 잃고 폐인이 되어 가자, 생계를 위해 저의 아내는 시 외곽의 변두리에 작은 분식 가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더욱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주변에 작은 공장들이 밀집한 곳이라 자연 손님들은 공장의 젊은 공원들이었습니다.
어떤 20대 초반의 손님은 백반 한 상을 시켜놓고 생마늘을 청합니다. 그 마늘을 씹다 말고 저를 부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아저씨 왜 마늘이 맵죠?” 이건 조그마한 식당에서 서빙하는 저를 원전 무시하고 놀리는 것으로 어린 손님의 갑질이 아닌 횡포로 느껴져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비참해서 울음을 삼키면 가게 뒤로 돌아가 소주를 병째 삼킵니다. 그래도 한때는 출판사의 편집장이었는데, 또 전문잡지 편집장이었는데 저런 어린 친구들에게까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나….
그런 나날이 계속되며 저는 깊은 술의 구렁을 빠져들게 됩니다. 헤어날 수 없는 알코올중독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마시면 죽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연로하신 부모님은, 아직 어린 두 아이는? 또 아내는? 이미 저는 폐인이 되었고, 아마도 간은 암까지는 몰라도 간경화까지는 간 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나만 살자고 분식집 운영으로 겨우 입에 풀칠도 힘겨운 아내에게 비싼 정신병원 치료를 요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엄혹한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나중에야 알았지만, 금단 증상을 두 차례 겪습니다.
첫 금단은 이렇게 옵니다. 비몽사몽 상대인 한낮이었습니다. 아침도 점심도 거른 상태였습니다. 알코올의 극심한 자극성으로 식도가 미란 상태로 짓물러 먹을 수 없고, 또 먹을 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극심한 조갈을 냉수로 겨우 달래며 누워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살던 집은 2층 슬래브 건물로 위층은 집주인 살고, 우리는 이래 층 가게에 딸린 조그만 방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술로 초주검 상태에서 초점 잃은 멍한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래층과 위층의 슬라브 사이에서 웬 젊은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정신줄은 놓지 않았는지 그들의 말소리가 선명히 전달되었습니다. 내용인즉슨, 젊은이들이 모여 반정부 전복 모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위층에는 연세 든 집주인 부부와 혼기를 놓친 노총각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면 집도 비울 테고, 더 이상한 것은 사람도 없는데, 웬 말소리가 1층과 2층 사이 슬라브 속에서 들려오는 것입니다.
슬라브 속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잖습니까? 그래 견디다 못해 밖으로 뛰어나가 행인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저기 이층 슬라브 속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죠? 그러자 그 행인은 별 미친놈 다 보았다는 듯한 눈으로 쏘아보고 말없이 휭하니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런 반정부 모의와 같은 환청은 알코올중독자들이 많이 겪는 증상이었습니다.
그렇게 1차 금단이 끝나고 며칠 후 2차 금단이 시작됩니다. 밤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금단은 취기가 있으면 절대 오지 않습니다. 심한 금단 상태에서도 술이 들어가면 거짓말처럼 금단이 사라집니다. 이런 금단이 무서워 술을 끊지 못하는 알코올중독자들도 많습니다.
술 없이 잠을 못 이루는 것도 일종의 금단입니다. 불면으로 잠을 이루기 위해 술을 수면유도제로 사용하다가 중독으로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탈진 상태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일 때였습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어릴쩍 죽마고우인 친구 전화였습니다. 오래동안 만나지는 못했지만, 소식은 듣고 있던 친구였습니다.
그는 당시 집권당의 요직에 있었습니다. 저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자격지심에 만나기를 꺼리던 친구였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친구가 내 전화번호를 알 리도 없을 텐데, 아무 의심없이 전화를 받습니다. 반갑다며 우리집에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내려놓고 잠든 아내를 깨웠습니다. 아내는 내 소란에 잠이 깨어 의심적은 눈초리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다구쳤습니다. 내가 식당 홀 청소를 할 테니 당신을 빨리 시 장보아다 친구 대접할 음식 장만하라고.
아내는 미친 사람 보듯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벨도 울리지 않은 전화를 붙잡고 혼자 통화하는 제가 완전히 정신병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점점 기력을 잃어가고, 곡기는 끊고 술에 의존하여 죽어가는 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드디어 정신병원에 입원시킵니다.
술과 함께 시작해야 하는 하루였습니다. 전날 음주로 아침 10시경에나 눈을 뜹니다. 술 없이 잠을 잘 수 없으므로 무슨 수를 쓰든 잠들기 위해 소주 2병을 구해 숨겨놓습니다, 한 병으로는 부족합니다. 오히려 정신이 더 똘망똘망해집니다. 그래 두 병째 음주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한창 마실 때는 소위 간에 기별도 아니 갈 양인데, 둘째 병의 반 정도에서 정신을 잃습니다. 장기간의 과도한 음주로 간의 알코올 분해 기능 심각한 손상을 입고 내성이 감퇴된 것입니다.
먼저 해장술을 마셔야 숙취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저를 살리기 위해 음주를 저지하려는 아내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집안에 고린 동전 한 잎 찾을 수 없습니다. 음식 장사를 하는 집인데 어디에 어떻게 숨기는지---. 음식점이니 반주를 즐기는 손님이나 술 찾는 손님을 위해 술이 준비되어 있을 텐데 그런 술도 없습니다. 손님이 술을 찾으면 앞집 구멍가게에서 가져다줍니다. 물론 술 도매상에서 상자로 받으면 더 저렴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건만 제가 훔쳐 마실까 두려워 비싸지만 한 병 한 병 사다 나릅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심정으로 술을 찾습니다. 정말 술 한잔과 영혼을 바꾸라면 바꿀 수밖에 없는 극심한 고통, 타는 듯한 조갈은 아무리 시원한 냉수로도 해소되지 않습니다. 머리가 깨어질 것만 같은 두통, 계속되는 헛구역질,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손 떨림, 터질 듯 뛰는 심장 박동, 이 모든 고통이 소주 반병이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편안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날이 왔습니다. 미처 잠에서 깨어 일어나기도 전에 아내가 황급히 들어와 이부자리를 치우면서 교회 전도사님이 오셨으니 예배 준비를 하라고 다그칩니다. 이런 불시의 방문 예배는 하나님을 쫓아낸 자리를 술로 채운 당시의 삶에 마치 고문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빨리 담배 피우고 해장술을 구해 마셔야 할 텐데 전도사님이라니, 아내에게 의존하고 사는 삶이라 거역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습니다.
잠시 후 전도사님과 몇 분의 여자 집사님들이 들어오고 가정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낭독하는 성경 구절은 왜 그리 길고, 찬송을 왜 그리 늘어지는지, 또 청승맞은 기도는 빨리 끝나지 않고 하염없이 계속되는지?
예배가 끝나자, 전도사님은 심각한 얼굴로 병원에 가자고 저를 압박했습니다. 제가 완강하게 거절하자 가서 진찰만 받아보자고 회유했습니다. 저는 화를 내면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어서 가시라고 문까지 열면 전도사님 일행을 내몰았습니다.
그들이 가고 잠시 숨을 돌릴 때였습니다. 문이 열리더니 아내가 막걸리 한 사발과 안주 몇 점을 방에 밀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애원해도 술을 주지 않던 아내가 달라지도 아니한 술을 줄 때 그 저의를 의심해야 할 텐데, 술이 급한 저는 의심할 겨를도 없이 그 술을 단숨에 마셨습니다. 뒤집히던 속이 편안하고 갈증도 해소되었습니다. 반쯤 누워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자 세상에 다시 없는 평온함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였습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정 두 명이 들이닥쳤습니다. 둘이 나의 두 팔을 꼼작 못하게 꺾어 제압하고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가게 옆 골목에는 병원 구급차가 시동을 켠 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술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