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치유 길라잡이

제66회 공동의존의 5가지 중심적 증상들

관리자
202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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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공동의존에 대하여 다시 알아보자. 중독자가 의존적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알코올중독증이 만성이 되면 알코올에도 생활에도 무력해진다. 그러나 환자는 이를 부정한다. 이러한 현상은 환자의 잘못이 아니다. 이 병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은 술이 취해서는 전두엽의 신피질이 마비되어 이성적인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취한 상태에서는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알코올 의존이란 취기가 사라지면 견딜 수 없없기 때문에 항상 체내에 알코올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그러한 상태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식주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활에 무력해지기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물론 자신이 마시는 술까지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의존한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가족이 병들어 환자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자식이 여럿인 칠순의 노모가 40대 막내아들과 살고 있다. 그 아들은 알코올중독자다. 형제는 많으나 모두 막내를 배척한다. 취하면 찾아와 행패요, 수시로 강요하는 것이 술값이다. 무전취식으로 술값과 벌금을 물어주는 것도 다반사다. 형제들은 외부 전화에 노이로제 증상까지 보인다. 또 만내가 취중 욕설이나 술값 요구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막내를 어느 형제가 반기겠는가?

할 수 없이 노모가 막내아들의 부양을 맡는다. 형제들은 그 자식 죽은 것로 알고 기도원에 평생 처박아 놓고 자기들과 같이 살자고 한다. 그러면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넉넉히 주는 용돈으로 노후를 즐기라는 간청도 뿌리친다. 나마저 그 자식을 버리면 그 자식은 무슨 꼴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며 노모는 그런 환경에 적응한다.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그 자식이 죽을 것만 같아 죽지도 못한다. 그리고 점차 그런 삶에 야릇한 희열을 느끼기 시작하며, 나아가 그런 비정상적인 돌봄에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젠 그 아들이 없으면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아내나 남편은 중독자인 배우자를 돌보는데 삶의 의미를 찾는다. 나니 저런 주정뱅이와 같이 살지 어느 누가 같이 살겠느냐고 말한다. 그 말속에는 자기 희생의 고귀함과 일종의 야릇한 자기 만족의 자긍심까지 엿보인다. 그렇게 진행된 중독자와이 삶에서 공동의존자는 어느 사이에 중독자 없이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배우자가 중독자와 이혼을 하고 재혼할 경우 다시 다른 중독자와 만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배우자의 술 문제에 큰 고통을 받고 술이라면 질겁을 할만도 한데 또 그런 사람과 결합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이렇게 중독자와 가족은 서로 의존한다. 이것이 공동의존이다.

1. 적절한 정도의 자기 존중감 표현에 어려움이 있다

건강한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로움과 귀중함을 내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긍정적인 자아의식을 위해 매우 필요하다. 건강한 사람은 비록 자신이 실수를 하거나 연인, 부모 또는 친구들로부터 거부되더라도 얼마나 자신이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인가에 대하여 알고 있다. 건강한 개인은 분노나 공포 그리고 상처를 어떤 상황 속에서 경험하더라도 근본적인 자기존중감은 손상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공동의존자는 극단적인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자존심이 매우 낮거나 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아서 자신이 남보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혼자 자녀를 기르고 가사는 물론 가정 경제까지 책인지는 순교자적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와는 반대로 자신들을 비하한다. 이와는 반대되는 극단의 경우는 과장되거나 거만한 자아(自我)다 즉 자신이 남을 조절할 수 있을 만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기능적 경계(boundart)를 형성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부모 자식간에도, 부부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지켜야할 경계가 존재한다. 경계 체계는 상징적이고 드러나지 않는다. 외적인 경계는 신체적이고 성적인 두 분야로 나뉘어져 있어 어느 정도의 선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조절한다. 우리의 내적 생각과 느낌 그리고 행동들을 보호해 주고 기능적으로 유지시킨다. 경계가 없는 공동의존자는 자신의 경계를 보호하기도 부족할 뿐 아니라 타인의 경계도 인정할 능력을 상실한다. 따라서 경계가 없는 공동의존자는 다른 사람의 경계에 대한 인식도 없으며, 따라서 타인의 경계에 의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지나치게 견고한 경계를 가질 수도 있다.

 

3. 현실감을 갖는데 어려움이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을 인정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의존자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모른다. 여기에서 사용하는 현실감이란 4가지 구성 요소를 갖는다. 그 첫째는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 둘째 우리의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셋째가 사고(thinking)면에서 주어진 정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감정적인 면에서 우리의 정서들을 그리고 행동적인 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다.


공동의존자는 이 4가지 분야를 인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 신체(the body) :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거나 어떻게 자 신의 몸이 작용하는가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 사고(thinking) :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아는 데 어려움 이 있고, 만일에 그것을 알더라도 그러한 사고를 공유하기 가 어렵다. 따라서 주어진 정보에 대하여 잘못된 해석을 부 여한다.

* 느낌(feeling) : 자신이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 어려 움이 있거나 또는 지나치게 과도한 감정을 느낀다.

*행동(behavior) :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인 식하기에 어려움이 있고, 또한 인식한다 하더라도 행동의 주체가 되고 그것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인 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4. 공동의존자의 유형(알코올중독자 가족의 유형)

공동의존의 신호와 증상이 너무 포괄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전문가도 이것을 다 보여줄 수는 없다. 자신의 문제를 부인하는 공동의존자는 자신이 공동의존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또는 자신의 공동의존의 정도를 축소하기 위하여 부정적 증거들을 사용하려고 한다. 우리는 공동의존자에 대한 일반적인 진단보다 다음과 같은 세분화된 변형 유형을 통하여 공동의존자에 대한 인식을 더욱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동의존자들의 여러 유형을 올바로 인식하는 일이다. 치료 과정에서 다음에 소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유형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한 유형의 공동의존자가 동시에 다른 유형을 갖거나 변형된 의존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의 정형화된 유형 속에서만 공동의존자를 보려고 것이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오류를 범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음 그 유형들을 살펴보자.

 

1) 순교자적 유형(The Martyr)

이것은 가장 일반적인 공동의존의 형태다. 거의 모든 공동의존자들이 순교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자신감을 갖는다. 이들은 불편함과 실망, 심지어는 아픔까지도 참을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에 즐거움을 찾는다. 이들은 배우자의 술병과의 싸움을 통하여 자기 존중을 얻는다. 이들은 효과적인 것보다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요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소설적인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느끼며, 실제로 가족들이 공동의존자를 인내심이 강하고 관대하며 오래 동안 고통받는 사람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순교자들은 자신들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며, 또 선택의 여지가 있다 할지라도 그 대안은 고려하기가 힘든 것들이다. 즉, 자신의 방식대로 살던가, 떠나던가. 아니면 상황에 정면 대결하던 가가 있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투자가 언젠가는 보상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희생해 간다. 이들은 내적으로 공허감을 느끼거나 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경험할 시간이 없거나, 있어도 아주 적다. 실제로 우리나라 알코올중독자들의 부인 사이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아주 많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니 저런 사람하고 살지 누가 살겠어요?. 나마저 떠나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어요? 내 자식은 누가 기르고요. 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요.“

자신들이 해온 순교자의 역할들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스스로 손실감을 보상받으려는 경향이 만성 알코올중독자들의 부인들에게서 많이 찾을 수 있다.


2) 박해자적 유형

순교자적 유형의 반대형이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통제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만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불행을 처리하기보다는 이것을 외면화(外面化)하고 극대화해서 이러한 불행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행동을 비난한다.

순교자적 유형의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지나친 책임감을 느낀다면, 이들은 자신들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다. 순교자들이 상대방을 개선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열심히 살도록 채찍질한다면, 이들은 자신의 안정감과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남을 압박한다.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조절할 수 있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모른다. 순교자가 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좋은 느낌을 느끼기 위해 남을 이용한다면, 이들은 분노와 죄의식을 처리하기 위해 남을 이용한다.

 

3) 공모자적 유형

어떤 공동의존자들은 알코올중독자가 단주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서 방해한다. 공동의존자들은 활동적인 약물의존 가족 내에서 발달된 자기 정체성에 강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회복된 가정에서 새 자아 정체성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데 불안을 느낀다. 변화보다는 공모자나 협조자가 되기 시작한다.

이런 행동들은 자신의 질병을 부인하거나 숨기려는 알코올중독자의 노력을 돕게 된다. 가장 깊이 돕는 행동은 공모자가 알코올중독의 존재 자체를 부인할 때 일어난다. 이런 부인은 너무 심해서 알코올중독자가 치료에 들어간 이후에까지 계속된다. 대부분의 공모자들은 단지 가족이 문제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외부의 가정(假定)에도 쉽게 감정을 상한다.

공모자들은 알코올중독이 나쁜 것임을 알면서도 이를 인정할 수 없다. 일부 공모자들은 가족원이 알코올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으며, 때로는 그 구성원에 대한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때 그들은 태도를 바꾸고 중독자가 술을 마시는 것을 허용하거나 자발적으로 술을 사다 주기도 한다. 이러한 불연속성에 대하여 지적을 받게 되면 이들은 그 행동이 문제에 기여했다는 것을 부인하며, 자신이 전혀 다르게 행동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술을 안 사다 줄 수가 없었어요. 내가 술을 안 사다 주거나 못 마시게 한다고 그 사람이 안 마실 사람인가요.“라고 변명한다.

 

4) 술친구적 유형(The Dringing / Drugging Partner)

이런 유형의 공동의존자는 똑같은 알코올중독자가 될 위험성이 크다. 그들의 삶의 스타일과 신념 체계는 알코올중독자와 매우 가깝기 때문에 중독으로 쉽게 전이될 수 있다. 많은 알코올증독자들은 알코올중독 가족 구성원과 잘 연계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알코올 사용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이들은 쉽게 알코올중독자가 되기도 한다.

공동의존자가 약물의존자나 알코올중독자의 약물이나 알코올에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눈이 열리기도 한다. 이것은 건강한 사람이 이러한 지식을 가지고 약물이나 알코올중독자를 정면으로 대결할 수 있는 시점이 되기도 한다.

 

5) 냉담한 공동의존자적 유형 (The Apatheyic Codependent)

일부 공동의존자는 단순히 중독자를 돕는 것을 중단한다. 이들은 완전히 용기를 잃어서 감정적으로 무감각 상태가 되기 시작한다. 냉담함이 어떤 평화나 고요함을 가져다 줄 수 있으나 이것을 인생에 희망도 없고, 삶의 의미도 없는 것이다. 특히 가장에 자녀들이 있을 때 더욱 괴로움을 주게 된다. 부모가 서로를 포기할 때 중독자와 함께하는 혼돈된 병적인 상태에서는 어떤 가족 구성원도 건강하게 반응할 수 없다.

이런 공동의존자는 치료자를 매우 곤혹스럽게 한다. 공동의존자가 냉담해지기 시작할 때 치료적인 동맹을 맺기 위한 치료 매개 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게 막혀 버리기 때문이다. 의존자는 효과적으로 문제 처리 기술을 사용하여 상처를 처리하려는 의도에 참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동의존자는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의존자에게 희망을 재연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무시되어지거나 또는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그것은 자신에게 희망을 갖도록 다시 허용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느낌이 들뿐 아니라 자신이 아픔을 또 다시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우 냉담한 공동의존자에게는 자살이 현실적이고 수용 가능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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