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치유 길라잡이

제44회 우리에게 일용할 알코올을 주옵시고

관리자
2024-09-05
조회수 25

C시 외곽의 정신병원에서 알코올중독 치료 교육 봉사를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출발해 병원 현관을 지날 때였다. 50대 중년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처연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가족 중 누군가의 면회를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차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차를 기다리세요?”

차창 너머로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망연자실했던 표정을 지우며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과의 면회를 마치고 귀갓길 차를 기다린다고 했다.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태워주기로 하고 그녀와 함께 병원을 출발했다.

몇 마디 의례적인 대화가 오가고 드디어 그녀는 자신과 남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남편은 서울 지하철공사의 직원이었다. 그리고 심한 알코올중독자였다. 여러 차례 정신병원의 입·퇴원을 반복하며 어렵게 직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직장에 마지막으로 병가를 얻어 이 병원에서 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는 길이었다. 너무나 자주 병가를 사용하여 이제 더 이상 병가를 쓸 수도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 병가로 내일까지 출근해야 직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일 출근시키기 위해 오늘 남편을 퇴원시키기 위해 병원에 왔다는 것이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그들은 귀가하기 위해 병원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지방도로 옆 간이 버스 정류소로 갔다. 그곳은 도심과 상당히 격리된 곳으로 시내버스 운행은 전혀 없고, 시외버스만 가끔 지나가는 곳이었다. 밥때를 놓친 그들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간이 버스 정류소 옆의 시골 중국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짜장면과 짬뽕을 시키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문제가 터졌다.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남편이 음식이 나와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차 하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아내는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에는 남편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화장실을 빠져나온 아내는 간이 정류소를 겸하고 있는 시골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그곳에 남편이 있었다. 그것도 천연덕스럽게 소주를 그것도 두 병씩이나 마시고 있었다.

오랜 반복된 경험으로 내일의 출근은 이제 물 건너간 것이었다. 한번 시작한 음주는 외부의 힘이 개입하여 중단시키지 않은 한 자신의 힘으로 음주의 중단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녀는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로 정신 차리고 제정신으로 회복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남편을 다시 정신병원에 재입원시키고 돌아가는 길에 나를 만난 것이었다. 아직 공부 중인 아이들이 둘씩이나 있는데 어떻게 살아갈지 앞이 깜깜하다고 흐느꼈다.

이렇게 병원을 나와 미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술을 마시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사건은 알코올중독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까? 사람은 먹기 위해 살까? 아니면 살기 위해 먹을까?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인류의 새벽, 원시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류가 진화를 거듭하고, 농경문화가 발달하자 먹는 것에 쏟아붓던 에너지를 다른 것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문명이 발달하게 되었다.

질문을 다른 것으로 돌려서 물어볼까? 알코올중독자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살기 위해 마시느냐? 아니면 마시기 위해 마시느냐?’ 그러면 그들은 무엇이라 대답할까? 그들은 마시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마신다고 대답할 것이다.

알코올중독자는 살아 숨 쉬는 하루를 견디기 위해 생명체가 영양 공급이 끊어지면 견디지 못하듯 음식 대신 알코올의 공급을 필요로 한다.

왜 이렇게 알코올중독자는 알코올에 목을 맬까? 알코올중독자는 알코올에 대한 집착으로 거의 모든 의지력을 술을 마시는 것에 집중하여 쏟아붓는다. 이런 현상은 신체적 의존 상태에서 보이는 공통된 증상이다. 알코올중독자는 마시기 시작하면 조절 능력의 상실로 음주 중단이 불가능하므로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신다.

다음 날 눈을 뜨고 아침을 맞으면 해장술을 마시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숙취의 고통이 엄습한다. 목이 타들어 가는 조갈이 시작된다. 그것을 물로는 해결이 안 된다. 갈증의 해소는 오직 해장술뿐이다. 소주 반병이면, 두통도, 손 떨림도, 터질 듯 뛰는 심장 박동도 끊업이 치밀어 오르는 헛구역질, 사시나무처럼 떨려오는 손떨림 등 모든 음주 후유증이 깨끗이 해소된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쳐 준 것처럼 기도하는 심정으로 술을 찾아 헤맨다. 나에게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나에게 오늘도 일용할 알코올을 주옵시고.”

이쯤 되면 그들의 가족은 술과의 전쟁을 벌인다. 아내의 지갑에 넣어둔 돈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아이가 구멍 뚫린 돼지저금통을 들고나온다. “엄마 누가 내 저금통 털어 갔어?” 아내와 아이의 쏘는 듯한 눈길이 아빠에게 꽂힌다. 이제 집안에 고린 동전 한 푼 찾을 수 없게 된다.

동네 가게마다 외상도 끊긴 지 오래다. 가게마다 내 남편 외상 주지 말라고, 내 남편에게 술을 주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사정하고. 또 외상을 주면 외상값 못 받을 줄 알라고 엄포를 놓아 그것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어느 중독자는 이웃 동네 구멍가게로 간다. 자기 동네에서는 몇 번 써먹은 수법이라서 통하지 않는다. 소주 두 병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주인에게 미리 보아둔 계산대에서 가장 먼 곳의 상품을 청한다. “00이 어디 있는지 못 찾겠네요. 그것 좀 가져다주실래요?” 하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척한다. 주인은 의심없이 주문한 상품을 가지러 간다. 알코올중독자는 그 순간을 노려 소주 두 병은 값도 치르지 않고 들고 쏜살같이 도망친다.

시 외곽 골목에는 구멍가게와 간이식당들이 구석구석에 박혀 있다. 아침나절이면 술 도매상 배달 차량이 나타난다. 2인 1조로 식당과 가게에 술을 내려준다. 이때 옆 골목에서 초라한 행색의 초로의 남자가 나타난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깎지 않은 수염이 텁수룩하다. 문자 그대로 봉두난발이다. 영락없는 노숙자 모습이다. 그는 주류 배달 차량에 다가가 주위를 살핀다. 배달원이 상품 계산을 위해 가게로 들어가자, 차에 매달려 소주 한 병을 뽑아 들고 비틀비틀 도망친다. 그 모습을 발견한 배달원을 소리만 친다. “저 도둑놈 잡아라.” 그 모습을 지켜본 동네 사람들이 묻는다. 쫓아가면 쉽게 잡을 수 있는데 왜 그냥 두느냐고. 그가 말한다. 어느 동네고 저런 사람들 한두 명은 꼭 있다고. 얼마나 술이 고프면 저런 짓을 하겠느냐고. 술이 고프단다. 정말 몇 끼 식사를 거른 사람의 시장끼처럼 정말 술에 허기진 것일까?

아내의 귀중품인 결혼반지는 몰래 팔아먹은 지 오래고, 술이 될 수 있는 것은 남아나지 않는다. 양심과 체면은 술과 바꾸어 먹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른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알코올중독자는 미친 듯 술을 찾아 헤맨다. 추운 겨울에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슬리퍼 바람에 집을 나선다. 그리고 동네 쓰레기통을 뒤진다. 쓰레기 더미에서 빈 소주병을 찾아낸다. 먼저 빈 병을 입에 대고 턴다. 혹시 술이 한 방울이라도 남아 있나 하고.

그는 이웃 동네까지 원정하여 가까스로 빈 병 20개를 찾아낸다. 공병 하나에 20원이던 시절이다. 20개면 400원, 소주 한 병을 마실 수 있다. 그의 표정에 안도의 미소가 떠오른다. 이제 살았다.

장사하는 상인들에게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택시 기사들은 안경 쓴 사람을 첫 손님으로 모시면 그날 재수가 없다는가? 이 친구도 그런 징크스를 안다. 그런데도 이른 아침이라 막 문을 여는 가게에 그가 첫 손님일 텐데 빈 병 20개를 들고 소주 한 병과 바꾸러 들어간다. 가게 주인은 불쾌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는 애써 아랑곳하지 않고 소주 한 병을 들고 으슥한 골목에 숨어든다. 그리고 피 같은 소주를 목구멍에 쏟아붓는다. 독한 소주가 목구멍을 타고 위로 내려가자 갑자기 십이지장에서부터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구토를 참을 수 없다. 급하게 마신 술이 오물이 되어 쏟아진다. 토해낸 술이 왜 그리 아까운지.

숨을 고르고 나머지 반병을 이번에는 다시 토해낼까 두려워 조심조심 마신다. 위장이 따뜻해 온다. 그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머리가 팽 돈다. 땅을 짚고 한참 숨을 고르면 눈도 열리고 머리도 맑아진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제 살 것 같다.

그는 40대 초반의 알코올중독자다. 네 살된 아들이 하나 있다. 아내는 남편 대신 돈 벌러 직장에 출근했다. 술은 마셔야 살 것 같은 데 돈도 씨가 마르고, 외상도 불가능하다. 고민 끝에 그는 해결책을 찾아낸다. 아이에게 과자 사준다고 거짓말로 꾀어 데리고 이웃 동네로 향한다.

가게에서 그는 소주 2병과 과자 몇 개를 계산대에 올린다. 그리고 빈 주머니에서 지갑을 찾는 척한다. 지갑이 있을 리 없다. 그가 말한다. “깜박하고 지갑을 안 가져왔네요, 집이 요기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돈 가져올게요.” 그리고 술과 과자를 든 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가게 주인은 아이를 두고 갔으니, 물건만 가지고 그냥 도망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아이 생각은 까맣게 잊고 황급히 마신 술에 곯아떨어진다.

어느 환자의 이야기다. 그의 아내는 무능력자가 된 남편 대신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그런 아내가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다. 환자 보호자로 병원에 동행한 그는 아내가 정신이 들자, 슬그머니 병원을 빠져나온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그는 집문서를 찾아들고 은행을 찾는다. 주택 담보 대출은 쉽게 이루어진다. 은행 대출로 술값을 챙긴 그는 잠적하여 술타령으로 그 돈을 탕진한다. 아내는 병원에 버려둔 체. 소설 같은 황당한 이야기나 사실로 알코올중독자들 세계에서 전설로 남아 있다.

이렇게 술로 하루의 생존을 유지하는 알코올중독자들의 갈 길은 두 개밖에 없다. 그중 하나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병원 입원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망이다.

 

 

0 0

담임 교역자 : 맹경재 목사

경기도 부천시 길주로 77번길 19 세진프리자 5F
T: 032-322-9111. E: mkji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