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가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그 지방에 사는 유대인들은 하늘의 심판자인 하나님께 사형 언도를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금식일을 선포했다.
온 회중이 기도와 회개를 하기 위해 회당에 모인 바로 그날, 주정뱅이 한 사람이 술을 마시려고 동네 술집에 들어갔다. 다른 유대인들이 그의 이런 행동을 보고 꾸짖으며 말했다.
“당신은 오늘이 금식일이므로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지금 랍비를 위해 기도하고 있네.”
그래서 주정뱅이도 회당에 들어가 기도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우리 랍비님이 건강을 되찾게 해주십시오.”
랍비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랍비는 다음과 같이 경위를 설명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을의 주정뱅이를 오래오래 살도록 해주시기를. 너희들의 기도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의 기도가 하나님께 들린 바 되었다는 사실을 알라. 그의 기도 속에는 온 마음과 영혼을 부었던 것이다.”
지독한 알코올중독자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마시기 위해 삽니까?”
알코올중독자가 대답한다.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물어본다.
“그러면 당신은 살기 위해 마십니까?”
이번에도 알코올중독자는 같은 대답을 한다.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알코올중독자의 마시는 이유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알코올중독자는 살기 위해 마시고, 또 마시기 위해 산다.
월남전 파병 당시의 이야기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주월 한국군 사령부는 맹호부대와 백마부대 합동으로 대규모 작전을 전개했다. 그 작전은 거의 20일간 계속되었다. 베트콩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은 정보망을 통해 수집하고, 주월 한국군 2개 사단이 그 지역을 광범위하게 포위하고, 포위망을 좁혀가며 숨어 있는 베트콩을 찾아 섬멸하는 작전이었다.
맹호부대 대대본부 작전과에 근무하던 나도 그 작전에 투입되었다. 먼저 보병들이 사위를 조망할 수 있는 작전지역의 가장 높은 고지를 점령하고 진지를 구축하면 우리 대대본부 지휘부는 헬기로 그곳에 이송되어 작전본부를 마련한다. 경계는 전투부대 1개 소대가 진지를 구축하고 지휘부를 보호한다. 물과 전투 식량 등은 헬기로 공수된다.
20일간의 작전을 끝내고 철수 준비를 할 때였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짙은 안개가 끼고, 심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병과는 같은 보병이었지만 행정 업무에 종사하는 정보와 작전과 요원들은 어디에 매복해 있을지도 모르고, 또 부비트랩이 산재한 정글을 헤치며 도보로 철수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했다. 그것은 일선 전투부대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철수시킬 헬기는 뜨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는 철수를 연기하고 날이 개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3일이 지나도록 비는 계속 쏟아지고 안개도 걷히지 않았다. 철수에 맞추어 보급된 물과 식량은 이미 바닥에 났다. 우리는 하늘만 쳐다보며 또 베트콩의 기습을 경계하며 주린 배를 빗물을 받아 소독약으로 소독한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4일이 경과하던 날 전투 중대 분대장인 하사가 찾아왔다. 작전을 마치고 철수를 위해 우리 지휘부의 경계을 맡고 있는 경비소대에 합류한 이웃 중대의 분대장이었다. 작전 중에는 우리에게도 미군과 똑같이 미제 전투 식량이 보급되었다. 전투 식량의 내용물은 통조림으로 깡통에 든 고기나 콩조림, 빵, 비스겟, 쨈 그리고 인스턴트 커피와 껌, 소금, 화장지와 이쑤시게, 네 가치의 담배와 성냥도 들어 있었다. 일선 전투부대원들은 비스킷을 먹지 않고 따로 모아 버렸다. 그것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베트콩들이 주워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땅을 파고 묻었다.
하사는 멀지 않은 곳에 비스킷을 묻었으니 그 곳에 가서 비스킷을 파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살 행위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우리가 작전할 때에는 땅굴 등 무성한 정글에 숨어들어 자취도 찾기 힘들었지만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자옥한 안개 속에서 베트콩의 눈에 띄면 그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그래서 그의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사가 돌아가고 4시간가량 경과했을 때였다. 그가 빗물이 줄줄 흐르는 상태로 철모 가득히 비스킷을 담아들고 나타났다. 우리는 할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질책을 각오하고 우리에게 온 그는 어처구니 없어 하는 우리의 표정을 읽고 씩 웃으며 비스킷을 내려놓고 이마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손등으로 씻으며 자기의 텐트로 돌아갔다. 목숨을 걸고 찾아온 약간의 비스킷을 자기들끼리 먹어도 간에 기별도 안 갈 터인데, 야단맞을 것을 감수하고 굶주린 전우들을 생각하여 철모 가득 비스킷을 담아온 전우애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소독한 빗물에 담가 퉁퉁 불어 터진 비스킷을 먹으며 우리는 감사의 인사를 이렇게 표현했다.
“바보 같은 자식. 이 비스킷이 뭐라고 목숨을 걸어?”
이렇게 생존을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것이 생존 본능이 아닌가? 동물들의 삶에서 먹는 것은 생명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살아 있는 기간의 거의 모두를, 또 에너지의 거의 모두를 먹는 것을 위하여 소비한다. 원시시대의 채집과 수렵 사회가 농경 사회로 발전함으로써 먹을거리의 확보를 위하여 사용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남는 시간을 소위 문화 생활에 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식량과 생활 필수품의 생산은 농노나 노예들에게 맡기고 귀족들은 먹고 마시고 취미 오락을 개발하여 인생을 즐기게 되었다. 이렇게 진화한 인간의 삶에서 하루 24시간을 식량을 구하는데 사용해야만 한다면 어찌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엥겔 지수(Engels coefficient)라는 것이 있다. 엥겔 지수는 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은 “소득의 증가에 따라 지출 중 음식 지출의 비중이 감소한다는 엥겔의 법칙을 발견했다. 가계가 가난할수록 음식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총지출(가계 소비)의 비율이 커진다. 식량에 사용되는 지출의 비율은 다른 조건과 동일할 때 인구 집단의 물질적 생활 수준을 가장 잘 측정하는 척도다. 때문에 엥겔 지수가 높다는(지출 중 식비의 비율이 높다) 것은 소득이 빈곤한 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소득이 낮은 저소득층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거의 모두를 식량 확보에 사용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예를 앞의 월남전의 예화에서 보여주었다.
알코올중독이 심화되면 알코올끼가 떨어지면 퇴약증후군인 금단섬망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알코올에 의존해야만 견딜 수 있으므로 24시간 알코올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생활 무능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엥겔 지수에서 이야기하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일하는 것과 동일하게 알코올중독자는 금단을 해소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고 술을 구해야 한다.
앞의 주정뱅이의 기도가 시사하는 것은 알코올중독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체에 들어온 알코올을 간이 대사분해하여 알코올끼가 사라지면 알코올중독자는 견딜 수 없게 된다. 숙취 또한 그를 고통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계속되는 타는 듯한 조갈(燥渴), 투통, 오심(헛구역질), 심계항진, 초조, 불안, 손떨림 등의 고통으로 목숨 걸고 해장술을 찾게 한다. 그리고 또 알코올이 공급되지 않으면 무서운 금단섬망이 시작된다.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오직 술 이외에는 없다. 술 한 잔과 자신의 영혼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한 잔의 술이 간절하다. 그리하여 주정뱅이가 한 잔의 술을 마시기 위해 하나님께 랍비를 살려달라는 기도가 얼마나 진실하고 간절했으면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을까?
이런 지난한 중독 치료에 가능성을 보여준 A.A.의 12단계를 영적 도구라고 한다. 이 치료 도구인 12단계의 해설은 곧 이어질 것이다.
랍비가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그 지방에 사는 유대인들은 하늘의 심판자인 하나님께 사형 언도를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금식일을 선포했다.
온 회중이 기도와 회개를 하기 위해 회당에 모인 바로 그날, 주정뱅이 한 사람이 술을 마시려고 동네 술집에 들어갔다. 다른 유대인들이 그의 이런 행동을 보고 꾸짖으며 말했다.
“당신은 오늘이 금식일이므로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지금 랍비를 위해 기도하고 있네.”
그래서 주정뱅이도 회당에 들어가 기도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우리 랍비님이 건강을 되찾게 해주십시오.”
랍비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랍비는 다음과 같이 경위를 설명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을의 주정뱅이를 오래오래 살도록 해주시기를. 너희들의 기도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의 기도가 하나님께 들린 바 되었다는 사실을 알라. 그의 기도 속에는 온 마음과 영혼을 부었던 것이다.”
지독한 알코올중독자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마시기 위해 삽니까?”
알코올중독자가 대답한다.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물어본다.
“그러면 당신은 살기 위해 마십니까?”
이번에도 알코올중독자는 같은 대답을 한다.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알코올중독자의 마시는 이유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알코올중독자는 살기 위해 마시고, 또 마시기 위해 산다.
월남전 파병 당시의 이야기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주월 한국군 사령부는 맹호부대와 백마부대 합동으로 대규모 작전을 전개했다. 그 작전은 거의 20일간 계속되었다. 베트콩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은 정보망을 통해 수집하고, 주월 한국군 2개 사단이 그 지역을 광범위하게 포위하고, 포위망을 좁혀가며 숨어 있는 베트콩을 찾아 섬멸하는 작전이었다.
맹호부대 대대본부 작전과에 근무하던 나도 그 작전에 투입되었다. 먼저 보병들이 사위를 조망할 수 있는 작전지역의 가장 높은 고지를 점령하고 진지를 구축하면 우리 대대본부 지휘부는 헬기로 그곳에 이송되어 작전본부를 마련한다. 경계는 전투부대 1개 소대가 진지를 구축하고 지휘부를 보호한다. 물과 전투 식량 등은 헬기로 공수된다.
20일간의 작전을 끝내고 철수 준비를 할 때였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짙은 안개가 끼고, 심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병과는 같은 보병이었지만 행정 업무에 종사하는 정보와 작전과 요원들은 어디에 매복해 있을지도 모르고, 또 부비트랩이 산재한 정글을 헤치며 도보로 철수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했다. 그것은 일선 전투부대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철수시킬 헬기는 뜨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는 철수를 연기하고 날이 개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3일이 지나도록 비는 계속 쏟아지고 안개도 걷히지 않았다. 철수에 맞추어 보급된 물과 식량은 이미 바닥에 났다. 우리는 하늘만 쳐다보며 또 베트콩의 기습을 경계하며 주린 배를 빗물을 받아 소독약으로 소독한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4일이 경과하던 날 전투 중대 분대장인 하사가 찾아왔다. 작전을 마치고 철수를 위해 우리 지휘부의 경계을 맡고 있는 경비소대에 합류한 이웃 중대의 분대장이었다. 작전 중에는 우리에게도 미군과 똑같이 미제 전투 식량이 보급되었다. 전투 식량의 내용물은 통조림으로 깡통에 든 고기나 콩조림, 빵, 비스겟, 쨈 그리고 인스턴트 커피와 껌, 소금, 화장지와 이쑤시게, 네 가치의 담배와 성냥도 들어 있었다. 일선 전투부대원들은 비스킷을 먹지 않고 따로 모아 버렸다. 그것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베트콩들이 주워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땅을 파고 묻었다.
하사는 멀지 않은 곳에 비스킷을 묻었으니 그 곳에 가서 비스킷을 파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살 행위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우리가 작전할 때에는 땅굴 등 무성한 정글에 숨어들어 자취도 찾기 힘들었지만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자옥한 안개 속에서 베트콩의 눈에 띄면 그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그래서 그의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사가 돌아가고 4시간가량 경과했을 때였다. 그가 빗물이 줄줄 흐르는 상태로 철모 가득히 비스킷을 담아들고 나타났다. 우리는 할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질책을 각오하고 우리에게 온 그는 어처구니 없어 하는 우리의 표정을 읽고 씩 웃으며 비스킷을 내려놓고 이마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손등으로 씻으며 자기의 텐트로 돌아갔다. 목숨을 걸고 찾아온 약간의 비스킷을 자기들끼리 먹어도 간에 기별도 안 갈 터인데, 야단맞을 것을 감수하고 굶주린 전우들을 생각하여 철모 가득 비스킷을 담아온 전우애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소독한 빗물에 담가 퉁퉁 불어 터진 비스킷을 먹으며 우리는 감사의 인사를 이렇게 표현했다.
“바보 같은 자식. 이 비스킷이 뭐라고 목숨을 걸어?”
이렇게 생존을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것이 생존 본능이 아닌가? 동물들의 삶에서 먹는 것은 생명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살아 있는 기간의 거의 모두를, 또 에너지의 거의 모두를 먹는 것을 위하여 소비한다. 원시시대의 채집과 수렵 사회가 농경 사회로 발전함으로써 먹을거리의 확보를 위하여 사용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남는 시간을 소위 문화 생활에 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식량과 생활 필수품의 생산은 농노나 노예들에게 맡기고 귀족들은 먹고 마시고 취미 오락을 개발하여 인생을 즐기게 되었다. 이렇게 진화한 인간의 삶에서 하루 24시간을 식량을 구하는데 사용해야만 한다면 어찌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엥겔 지수(Engels coefficient)라는 것이 있다. 엥겔 지수는 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은 “소득의 증가에 따라 지출 중 음식 지출의 비중이 감소한다는 엥겔의 법칙을 발견했다. 가계가 가난할수록 음식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총지출(가계 소비)의 비율이 커진다. 식량에 사용되는 지출의 비율은 다른 조건과 동일할 때 인구 집단의 물질적 생활 수준을 가장 잘 측정하는 척도다. 때문에 엥겔 지수가 높다는(지출 중 식비의 비율이 높다) 것은 소득이 빈곤한 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소득이 낮은 저소득층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거의 모두를 식량 확보에 사용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예를 앞의 월남전의 예화에서 보여주었다.
알코올중독이 심화되면 알코올끼가 떨어지면 퇴약증후군인 금단섬망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알코올에 의존해야만 견딜 수 있으므로 24시간 알코올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생활 무능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엥겔 지수에서 이야기하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일하는 것과 동일하게 알코올중독자는 금단을 해소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고 술을 구해야 한다.
앞의 주정뱅이의 기도가 시사하는 것은 알코올중독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체에 들어온 알코올을 간이 대사분해하여 알코올끼가 사라지면 알코올중독자는 견딜 수 없게 된다. 숙취 또한 그를 고통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계속되는 타는 듯한 조갈(燥渴), 투통, 오심(헛구역질), 심계항진, 초조, 불안, 손떨림 등의 고통으로 목숨 걸고 해장술을 찾게 한다. 그리고 또 알코올이 공급되지 않으면 무서운 금단섬망이 시작된다.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오직 술 이외에는 없다. 술 한 잔과 자신의 영혼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한 잔의 술이 간절하다. 그리하여 주정뱅이가 한 잔의 술을 마시기 위해 하나님께 랍비를 살려달라는 기도가 얼마나 진실하고 간절했으면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을까?
이런 지난한 중독 치료에 가능성을 보여준 A.A.의 12단계를 영적 도구라고 한다. 이 치료 도구인 12단계의 해설은 곧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