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치유 길라잡이

중독 단상 9 겸손이 중독과 믿음의 회복의 시작

관리자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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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謙遜;Humility)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는 것, 또는 그 태도로 풀이한다. 그래서 흔히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처세 수단쯤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어도 낮은 척, 있어도 없는 척 등 자기를 낮추고 교만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공직 후보자들은 겸손을 몸소 실천한다. 평소 그렇게 오만불손하고 도도하던 그들을 한 표를 구걸하기 위하여 맨땅에 넘쭉 엎드려 큰 절로 겸손을 실천한다.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의 자조 모임인 A.A.(Alcoholice Anonymous)가 미국에서 1935년에 시작되기 전까지는 알코올중독은 치료가 불가능한 병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A.A.가 빌 윌슨과 밥 스미스에 의해 시작되고서야 알코올중독자들의 회복에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록펠러까지 후원을 아끼지 않은 A.A.는 전 세계에 확산되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주기도문인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문>을 암송하고 모임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A.A.의 치료 프로그램의 12단계 중 제1단계 “우리는 알코올에 무력했으며, 스스로 생활을 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시인했다”를 시인 단계라 부른다. 그리고 성경에서 걸맞는 구절을 찾아내 이런 설명을 곁들인다. “내 속에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노라.” 이것은 계속 술을 마시면 죽을 것 같으니까 끊여야 하는데, 마음에는 술을 끊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 그리고 살기 위해 절대 마시지 말아야 하는데, 내 육신의 선한 것, 즉 술을 끊으려는 능력이 없어 끊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실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라는 동산에 오른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 셋,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 내가 마음 심히 고민되어 죽게 되었으니 깨어 있으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땀이 땅에 떨어져 핏방울같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평소와 다른 예수님의 모습과 말씀에 제자들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자지 않고 예수님처럼 기도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피곤해 세 명 모두 그만 잠들고 말았다.

기도를 마치고 예수님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잠들어 있었다. 이런 일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자 예수님이 수제자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알코올중독자들도 술을 끊어야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 그런 결심은 삼일을 못 넘기고 실패로 끝난다. 그런 시행착오을 하기를 수십 차례, 이런 사실이 앞에 인용한 성경의 기록과 같지 아니한가?

A,A 회원들은 “입 있는 자 살아남고, 귀 있는 자 살아남는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A.A.회원들은 “경험담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술로 망가진 지난 날을 숨김없이 고백하고, 다른 회원들의 실패 경험담을 들으며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시행착오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또 자신과 다른 알코올중독자들의 경험담을 나누며 알코올에 대한 무력함을 거듭 확인하고 또 자신의 삶까지 무력해졌음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A.A.회원들은 빅 북을 통하여 알코올중독은 불치병이며, 자신의 능력으로는 물론이고 어느 누구의 도음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한 병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들의 위대한 책, 그래서 빅 북이라 부르는 그 책에는 43편의 실패 경험담이 수록되어 있다. A.A.회원들은 그 책을 읽으며, 또 회원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그래서 자신이 알코올에 철저히 무력해졌음을, 철저히 겸손해졌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것이 종교와 조화를 이룬다.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겸손에 대하여 알아보자. 겸손은 다른 종교에서는 영예롭게 생각하지 않으며, 심지어 인식조차 못하는 성경적 신앙의 특유한 덕(德)이다. 기독교적 전통의 적극적인 영향을 받은 자들을 제외하고 철학자들은 한결같이 이 겸손의 덕을 무시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겸손의 이면(裏面)이라고 할 수 있는 고결한 자만심을 찬양했다. 프르드리히 니체는 겸손을 타락한 도덕성의 본질적 부분이라고 혹평했다. 그리고 그는 바울과 같은 못난 개인들이 일종의 노예 근성을 최고의 탁월한 위치에 올려 세움으로 그들의 천박함과 허약성을 변형시키려는 변질된 가치관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므로 겸손은 니체에 의해 반기독교적이며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초인에게 구체화 될 수 있는 순수한 인간성에 대한 부정으로 비난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계시적 유신론적 사상에서 비롯한 겸손은 피조물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올바른 태도며,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미덕이다. 겸손은 피조물이 자신의 창조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연적 인식이며, 또한 자아 실제적 존재와 전적으로 우연한 존재 사이의 간격이다.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골(Kierkegaard)은 겸손은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에 대한 솔직하고 분명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겸손이란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이 오직 은혜의 산물이며, 한 인격을 비존재에서 불러내어 그를 매 순간 다시 무(無)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유지해 주는 측량할 길 없는 자비(慈悲)라는 것을 깨닫는 겸허한 자세라고 설명한다.
겸손은 자신이 먼지와 재(창세기18;27)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아브라함의 고백에 잘 나타나 있다.

A.A.에서는 치료 프로그램인 12단계 중 제1단계를 시인(是認) 단계 나아가 겸손 단계라고 가르친다. 제1단계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 생활을 악화시킬 정도로 술에 졌다는 것을 깨닫고 시인했다.> 이것은 알코올중독자가 된 사람은 불치병인 알코올의존증에 걸린 환자이며, 한번 알코올중독자가 되면 철저하게 술에 의존되어 있어, 즉 노예가 되어 끊는 것도 불가능하고, 또 온갖 치료로 마시는 것을 중단할 수는 있어도 다시 정상적인 음주자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수많은 경험담을 통하여 깨닫고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재발이 가능한 잠복성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영원한 환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알코올중독자는 100번 넘게 정신병원을 드나들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알코올중독이라는 병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물론 어느 누구의 도움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면 그런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마시다가 비참하게 죽을 수 없으므로 살기 위해 인간이 아닌 초월적 존재인 신, 즉 위대한 힘의 도움을 받으라고 가르친다. 그리하여 그들의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기록 <Came to believe)라는 소책자에서 이 신을 찾아 신과의 합일로 중독에서 회복되는 과정의 기록을 모아 “영적 여행”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A.A.의 창시자 빌 윌슨은 <제4장 강박관념에서의 해방>에서 “우리 음주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저항하려는 의지가 사라졌다. 그러나 완전한 패배를 시인하고 A.A.의 원칙을 실천하려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게 될 때 강박관념은 사라지고,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갔다. 즉 우리가 이해하는 하나님 아래에서의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라는 빌의 1966년의 편지글을 인용한다.

이 편지, 저항하려는 의지는 내가 술에 저항하려는 의지, 나의 힘으로 또 인간의 도움으로 술을 끊어보려는 의지를 포기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자고, 그래서 겸손의 밑바닥까지 낮아져서 살기 위해 위대한 힘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살기 위해 믿음을 갖게 되는 영적 여행의 기록을 소개한다.

앞에서 제1단계를 시인 단계라고 말했다. 시인은 곧 앞에서 이야기한 것 같이 겸손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다음 사실들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에 가장 잘 합치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옷을 입기 위해 우리는 장점이 전혀 없는 벌거숭이임을 인정하고, 그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우리에게 좋은 것이 전혀 없음을 인정하고, 그로 말미암아 조명을 받기 위해 우리는 소경임을 인정하고, 그에게 고침을 받기 위해 우리는 절름발이임을 인정하고, 그의 도우심을 얻기 위해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는 그 안에서 영광을 얻도록 우리 자신에게 영광 돌릴 가치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말은 겸손의 정의로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쟝 칼뱅의 저서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설명하며, 겸손이 믿음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무력함의 시인이며 나아가 겸손에 이르는 기독교 믿음의 근본이다. 겸손의 믿음의 시작인 것이다.

오래 전 기도원 전성시대가 있었다. 당시 의료 수준이 지금만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불치병으로 고생하고, 암 등의 질병으로 생명을 잃을 때였다. 병원에서 6개월 또는 일 년이란 시한부 인생의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살기 위해 종교에 귀의했다. 그리고 모두는 아니지만 얼마의 환자들이 기도를 통해 또는 병 고치는 신유의 은사를 받은 기도원장들에게 안수를 받고 암이 치유되었다는 소문이 종교계에 널리 퍼져나갔다. 그리하여 말기암 환자들이 기도원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나도 도무지 끊어지지 않는 술을 끊어보겠다고 포천의 유명한 H기도원을 찾는 일이 있었다. 그곳에는 말기암환자는 물론 그 환자 보호자들로 2천여 명이 들어가는 거대한 예배당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곳에서 한때 세상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유명 여성 톱스타의 유방암 시술을 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상당한 재력가와 결혼하고 연예계에서 은퇴한 것로 알고 있던 배우였는데, 그 여배우가 유방암에 걸려 세상 유명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하자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소문난 그 기도원에서 의학에서 인정받지 못한 치료에 생명을 맡긴 것이었다.

알코올중독은 점진적 진행성 질병이다. 그리고 육체적 질환이 오기보다 먼저 정신적으로 병들기 때문에 그리고 마시기 위해 자신의 병인 알코올중독을 부정하기 때문에 합병증을 사망이 오기 직전까지 앞에서 말한 말기암 환자들과 같은 위기의식을 못 느낀다. 또 간질환의 경우 간은 자각증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말기까지 진행되어서 통증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병을 알아채고 치료를 서두르나 이미 병이 악화되어 치료 시기를 놓친다. 이와 똑같이 알코올중독은 점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알코올중독의 위험에 도달하기 전까지 이 병을 부인하고 끝까지 치료받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사망에 도달한다.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가족이 아직 알코올 지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치료 기관을 찾아 자신의 병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알고 알코올중독이라는 병에 굴복하고 말기암 환자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가 기도원을 찾듯 또 성경에서 만난 수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살기 위해 예수님 옷가락이라고 잡으며 살기를 기도하듯 완전한 항복, 즉 겸손의 지경에 이르려 치료를 의존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일 것이다. 그리하면 말기암에 걸린 부자가 살기 위해 목숨만 살려준다면 자기가 평생 모은 돈은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심정으로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불 물을 가리지 않고 따르지 않겠는가?

알코올중독자는 강박적 음주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강박증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계속 마시면 죽는 줄 알면서도 마신다. 마시지 말아야지, 마시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마신다. 이것이 강박적 음주다. 이런 강박증을 제거하는 것이 믿음이다. 어떤 강력한 힘을 가진 분이 나를 보호해 준다고 믿으면 강박증이 사라진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사망이다. 그러나 죽음도, 죽은 후의 행복한 저세상이 있다고 믿는 신자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면서 순교한 사실을 우리는 셩경에서만 아니라 역사에서도 만나지 않았던가? 그래서 권면한다. 정말로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면 살기 위해 없는 신을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한번 믿어보라고. 그리고 그 신의 가르침을 살기 위해 따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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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교역자 : 맹경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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